태그 : 떠도는그림자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산을 넘는 여자, 허 연
한 사람이 주저앉은 모습을 본다는 것. 비가 왔다는 것.
새벽 육교 밑이었다는 것. 내 피가 빗물에 쓸려 가는 걸 바
라보며 내가 걸었다는 것. 내가 넘은 것이 아마도 산이었다는 것.
나는 돌아왔다. 죽지 않고 산을 넘는 여자를 보기 위해.
그 여자가 갇힌 채 발을 동동 구르던 세상에 오래오래 떠돌기 위
해. 죽지 않는 여자와 죽어 가는 나를 세상에 남기기 위해.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있다. 울 줄도 내 목을 조일
줄도, 나를 용서할 줄도 아는 그 여자. 너무나 자폐적이고
미숙한 그 여자가 있다. 파장 무렵 녹슨 청동거울 앞에 앉
은 여자. 아무리 봐도 통속은 아닌 그 여자.
겨울 아파트 단지의 병적이 정취가 어울리는 여자. 내가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니고, 내가 없어도 아무 것도 아닌 여자.
죽지 않는 여자. 지금도 걸어서 산을 넘는 여자.
나는 돌아왔다. 서른 개가 넘는 산을 넘어.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by | 2009/06/17 21:02 | 글쓴이의의도 (글, 그림) | 트랙백 | 덧글(3)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